성경의 숨은 재밌는 이야기 · 65

학개,
판벽한 집에 사는
백성에게 보낸 독촉장

16년 동안 멈춘 성전 공사,
넉 달 동안 네 번의 설교로 다시 일어서다

학개 1–2장
여는 글

학개서는 짧지만 아주 실용적인 책이에요. 바벨론에서 돌아온 백성이 성전 기초를 놓았다가 반대에 부딪혀 공사를 멈췄어요. 그리고 16년이 흘렀어요. 😮 그동안 백성은 자기 집은 멋지게 지었는데, 하나님의 집은 폐허로 내버려 뒀어요. "아직 때가 아니다"라면서요.

그때 학개가 나타나 독촉장을 보내요. 그런데 놀랍게도 백성이 순종해요. 선지자의 말을 듣고 23일 만에 공사를 다시 시작해요. 구약 선지서 가운데 이렇게 즉각 순종한 이야기는 드물어요. 판벽한 집, 구멍 난 전대, 두 단어의 약속, 모든 나라의 보배, 나중 영광, 옮겨 가지 않는 거룩, 그리고 인장 반지까지 따라가 볼게요.

1부

학개는 어떤 책일까?

멈춘 성전 공사를 다시 일으킨 네 편의 설교

학개서는 주전 520년, 페르시아 왕 다리오 2년에 전한 네 편의 메시지예요. 주전 538년 고레스의 칙령으로 돌아온 백성은 성전 기초를 놓았지만(스 3장), 주변 사람들의 방해로 공사가 멈췄어요(스 4:24). 그 뒤 16년 동안 성전은 폐허로 남아 있었어요. 학개는 동역자 스가랴와 함께 백성을 깨웠고(스 5:1), 총독 스룹바벨과 대제사장 여호수아가 앞장서 공사를 다시 시작했어요. 성전은 4년 뒤인 주전 516년 무렵 완공돼요(스 6:15).

날짜가 정확한 설교학개서의 네 메시지에는 모두 날짜가 붙어 있어요. 여섯째 달 1일(1:1)부터 아홉째 달 24일(2:10, 20)까지, 석 달 남짓한 기간이에요. 현대 달력으로도 날짜를 거의 정확히 계산할 수 있어요.
"명절"이라는 이름학개는 히브리어로 "명절, 축제(하그)"와 관련된 이름으로 봐요. 명절 즈음에 태어난 아이였을 거라는 해석도 있어요. 실제로 그의 두 번째 메시지는 초막절 마지막 날에 주어졌어요(2:1).
학개의 큰 특징 다섯 가지
1
네 편의 설교
석 달 남짓한 기간에 주어진 네 개의 짧은 메시지예요.
2
"너희의 행위를 살필지니라"
백성에게 자기 삶을 돌아보라는 말이 되풀이돼요.
3
즉각적인 순종
백성이 23일 만에 공사를 다시 시작해요(1:14-15).
4
나중 영광
작은 성전이지만 그 영광이 이전보다 크리라고 약속하세요.
5
다윗의 자손 스룹바벨
하나님이 스룹바벨을 인장 반지로 삼으시겠다고 하세요.

학개서의 중심에는 이 약속이 있어요. "이 성전의 나중 영광이 이전 영광보다 크리라 나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내가 이곳에 평강을 주리라"(2:9). 솔로몬 성전보다 초라했던 그 성전에, 훗날 성전보다 더 크신 분, 예수 그리스도(마 12:6)가 직접 들어오셨어요.

2부

더 깊이 숨은 7가지 장면

판벽한 집부터 인장 반지까지

1

"아직 때가 아니다"라던 사람들의
판벽한 집

학개 1:1-4

학개의 첫 메시지는 백성의 핑계를 그대로 옮기는 것으로 시작해요. "이 백성이 말하기를 여호와의 전을 건축할 시기가 이르지 아니하였다 하느니라"(1:2). 😄 "아직 때가 아니야", "형편이 좀 나아지면 하자". 16년 동안 그 말을 반복했어요.

그러자 하나님이 물으세요. "이 성전이 황폐하였거늘 너희가 이때에 판벽한 집에 거주하는 것이 옳으냐"(1:4). "판벽한 집"은 벽과 천장을 나무판으로 덧댄 집이에요. 바위와 흙벽이 보통이던 그 땅에서 나무판, 특히 백향목 판으로 벽을 꾸미는 것은 왕궁에서나 하던 사치였어요(왕상 7:7).

백성은 성전을 지을 돈과 시간이 없다고 했지만, 자기 집을 꾸밀 돈과 시간은 있었어요. 😮 "때가 아니다"가 아니라 "우선순위가 아니다"였던 거예요. 하나님은 그들의 집을 탓하신 게 아니라, 그 집이 하나님의 집보다 앞서 있는 것을 물으셨어요. 예수님도 말씀하셨어요.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마 6:33). 하나님을 먼저 두는 삶에 나머지 모든 것이 따라와요.

돌아보기
"아직 때가 아니다"라며 미뤄 둔 하나님의 일은 무엇인지, 내 집의 판벽이 하나님의 집보다 앞서 있지 않은지 돌아봅니다.
2

많이 뿌려도 적게 거두고,
"구멍 뚫어진 전대"

학개 1:5-11

하나님이 말씀하세요. "너희는 너희의 행위를 살필지니라"(1:5). 직역하면 "너희 길에 너희 마음을 두라"예요. 그리고 그들의 삶을 보여 주세요. "너희가 많이 뿌릴지라도 수확이 적으며 먹을지라도 배부르지 못하며 마실지라도 흡족하지 못하며 입어도 따뜻하지 못하며 일꾼이 삯을 받아도 그것을 구멍 뚫어진 전대에 넣음이 되었느니라"(1:6).

😄 "구멍 뚫어진 전대". 열심히 일해서 돈을 받아 주머니에 넣는데, 어느새 다 새어 나가 버려요. 월급날이 지나면 어디로 갔는지 모르게 통장이 비어 있는 느낌이에요. 백성은 열심히 일했지만 늘 부족했어요.

그리고 하나님이 그 이유를 말씀하세요. "너희가 많은 것을 바랐으나 도리어 적었고 너희가 그것을 집으로 가져갔으나 내가 불어 버렸느니라 나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이것이 무슨 까닭이냐 내 집은 황폐하였으되 너희는 각각 자기의 집에 빨랐음이라"(1:9). 하나님의 집은 버려두고 자기 집으로만 "달려간" 결과였어요. 학개는 그 해의 가뭄도 이 때문이라고 말해요(1:10-11). 우리 삶의 구멍 난 전대를 막는 길은 더 많이 버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먼저 모시는 것이에요.

돌아보기
열심히 일해도 늘 새어 나가는 것 같은 내 삶의 "구멍 난 전대"를 하나님 앞에 펴 놓고, 내 길을 살핍니다.
3

23일 만에 다시 든 연장,
두 단어짜리 예언 "내가 너희와 함께 하노라"

학개 1:12-15

구약 선지서를 읽다 보면 선지자가 외쳐도 백성이 듣지 않는 장면이 대부분이에요. 그런데 학개서는 달라요. "스알디엘의 아들 스룹바벨과 여호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와 남은 모든 백성이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의 목소리와 선지자 학개의 말을 청종하였으니… 백성이 다 여호와를 경외하매"(1:12). 😮 지도자부터 백성까지 모두 순종했어요.

그러자 하나님이 학개를 통해 짧은 말씀을 주세요. "내가 너희와 함께 하노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1:13). 히브리어로는 "아니 잇테켐", 단 두 단어예요. 성경에서 가장 짧은 예언 가운데 하나예요. 길게 설명할 필요가 없었어요.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것, 그것이면 충분했어요.

그리고 "여호와께서… 영을 흥분시키시매 그들이 와서 만군의 여호와 그들의 하나님의 전 공사를 하였으니"(1:14). 날짜가 적혀 있어요. 첫 메시지가 여섯째 달 1일이었는데, 공사를 시작한 날은 여섯째 달 24일이에요(1:15). 😊 23일 만이에요. 그 사이에 돌을 모으고 나무를 준비했을 거예요. 16년 동안 미루던 일을 3주 만에 시작했어요. 순종하는 백성에게 주신 약속은 임마누엘,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이에요.

돌아보기
16년을 미루던 일도 오늘 순종하면 시작될 수 있음을 믿고, "내가 너희와 함께 하노라"는 약속을 붙들고 일어섭니다.
4

"모든 나라의 보배가 이르리니",
"모든 나라가 사모하는 이"

학개 2:1-9 · 히브리서 12:26-28

공사가 시작되고 한 달쯤 지난 초막절 마지막 날, 학개가 두 번째 메시지를 전해요(2:1). 공사를 해 보니 실망스러웠어요. 솔로몬 성전을 기억하는 노인들은 이렇게 생각했을 거예요. "이게 성전이라고?" 하나님도 그 마음을 아시고 물으세요. "이 성전의 이전 영광을 본 자가 누구냐 이제 이것이 너희에게 어떻게 보이느냐 이것이 너희 눈에 보잘것없지 아니하냐"(2:3).

그리고 격려하세요. "스룹바벨아 스스로 굳세게 할지어다… 이 땅 모든 백성아 스스로 굳세게 하여 일할지어다 내가 너희와 함께 하노라"(2:4). 그리고 약속하세요. "내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육지를 진동시킬 것이요 또한 모든 나라를 진동시킬 것이며 모든 나라의 보배가 이르리니 내가 영광으로 이 성전에 충만하게 하리라"(2:6-7). 히브리서는 이 "진동"을 인용하며 흔들리지 않는 나라를 말해요(히 12:26-28).

"모든 나라의 보배"는 히브리어로 "모든 나라가 사모하는 것"으로도 읽혀요. 😊 그래서 옛 영어 성경(킹제임스)은 이 구절을 "모든 나라가 사모하는 이가 오리니"로 옮겼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이를 메시아 예언으로 읽어 왔어요. 찰스 웨슬리의 성탄 찬송에도 예수님을 "모든 나라가 사모하는 이"라고 부르는 가사가 있어요. 보잘것없어 보이는 성전을 영광으로 채우실 분은 모든 나라가 사모하는 예수님이세요.

※ 2:7의 "보배"를 메시아 예언으로 읽을지, 열방이 가져올 재물로 읽을지는 해석이 나뉘어요. 히브리어 동사가 복수형이라 "보물들"로 보는 학자들이 많아요.

돌아보기
내가 하는 일이 "보잘것없다" 느껴질 때, 함께하시며 그 일을 영광으로 채우실 하나님을 바라보고 다시 굳세게 일합니다.
5

초라한 성전의 "나중 영광",
그 성전에 들어오신 분

학개 2:9 · 요한복음 2:19-21 · 마태복음 12:6

"이 성전의 나중 영광이 이전 영광보다 크리라 나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내가 이곳에 평강을 주리라"(2:9). 😮 솔로몬 성전은 금으로 덮여 있었고, 하나님의 영광이 구름으로 가득했어요. 그런데 이 작은 성전이 그보다 더 영광스러울 거라니요.

이 성전은 500년 동안 이어지며 여러 번 수리되었고, 예수님 시대 직전 헤롯 대왕이 대대적으로 확장하기 시작했어요. 주전 20년 무렵 시작된 공사가 예수님 시대에도 계속되고 있었어요. "이 성전은 사십육 년 동안에 지었거늘"(요 2:20). 헤롯 성전은 웅장했지만, 그것이 "나중 영광"의 진짜 의미는 아니었어요.

이 성전에 아기 예수님이 봉헌되셨고, 열두 살 소년 예수님이 율법 선생들과 대화하셨고, 어른 예수님이 장사꾼들을 내쫓으시고 가르치셨어요. 그리고 예수님은 말씀하셨어요. "성전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느니라"(마 12:6). 또 이렇게도 하셨어요.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그러나 예수는 성전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요 2:19-21). 초라한 성전의 나중 영광은 금이 아니었어요. 그 성전에 들어오신 하나님의 아들이었어요. 그리고 그분이 약속하신 평강을 주셨어요.

돌아보기
내 삶이 초라해 보여도, 그 안에 성전보다 크신 예수님이 계시면 이전보다 더 큰 영광이 있음을 믿습니다.
6

거룩한 고기는 거룩을 옮기지 못하고
부정은 옮아간다

학개 2:10-19 · 마태복음 8:1-3

세 번째 메시지에서 학개는 제사장들에게 율법 문제를 물어요. "사람이 옷자락에 거룩한 고기를 쌌는데 그 옷자락이 만일 떡에나 국에나 포도주에나 기름에나 다른 음식물에 닿았으면 그것이 성물이 되겠느냐". 제사장들이 대답해요. "아니니라"(2:12).

그리고 다시 물어요. "시체를 만져서 부정하여진 자가 만일 그것들 가운데 하나를 만지면 그것이 부정하겠느냐". 제사장들이 대답해요. "부정하리라"(2:13). 😮 거룩은 전염되지 않지만, 부정은 전염된다는 거예요. 좋은 것은 옮아가지 않는데, 나쁜 것은 쉽게 옮아가요. 학개는 이 원리로 말해요. 성전 터에서 제사를 드려도, 그들의 마음과 삶이 부정하면 그들이 드리는 것도 다 부정해진다고요(2:14).

그런데 신약에서 이 원리가 놀랍게 뒤집혀요. 나병 환자가 예수님께 와서 깨끗하게 해 달라고 했을 때, 예수님은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셨어요(마 8:3). 율법대로라면 예수님이 부정해져야 해요. 그런데 오히려 나병 환자가 깨끗해졌어요. 😊 예수님 안에서는 거룩이 부정보다 강해요. 그리고 학개는 이 메시지를 이렇게 맺어요. "이 날부터는 내가 너희에게 복을 주리라"(2:19). 우리의 부정을 만지셔서 깨끗하게 하시는 분은 거룩하신 예수님뿐이에요.

돌아보기
부정이 쉽게 옮아오는 세상에서 거룩을 지키기 어렵다는 것을 인정하고, 나를 만지셔서 깨끗하게 하시는 예수님께 나아갑니다.
7

저주받은 할아버지의 반지,
손자에게 다시 끼워지다

학개 2:20-23 · 예레미야 22:24 · 마태복음 1:12

학개서의 마지막 메시지는 총독 스룹바벨 한 사람에게 주신 말씀이에요.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스알디엘의 아들 내 종 스룹바벨아 내가 너를 세우고 너를 인장으로 삼으리니 이는 내가 너를 택하였음이니라"(2:23). 인장 반지는 왕의 권위를 대신하는 도장이었어요. 왕이 가장 아끼고 늘 손가락에 끼는 물건이에요.

그런데 이 말씀에는 놀라운 배경이 있어요. 약 80년 전, 하나님은 유다 왕 여호야긴(고니야)에게 예레미야를 통해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고니야가 나의 오른손의 인장 반지라 할지라도 내가 빼어"(렘 22:24). 😮 다윗 왕조를 인장 반지에서 빼 버리시겠다는 무서운 심판이었어요. 그 여호야긴은 바벨론으로 끌려가 감옥에 갇혔어요.

그런데 스룹바벨이 누구일까요? 바로 그 여호야긴의 손자예요(대상 3:17-19; 마 1:12). 하나님이 할아버지 손가락에서 빼 버리신 인장 반지를, 손자에게 다시 끼워 주신 거예요. 다윗 왕조를 향한 약속이 끝나지 않았다는 선언이에요. 스룹바벨 자신은 왕이 되지 못했지만, 마태복음 족보에서 그 이름은 계속 이어져 마침내 한 분에게 닿아요.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예요. 하나님의 인장은 그분 위에 찍혔어요(요 6:27).

돌아보기
한 번 빼 버리신 것 같은 은혜도 다시 끼워 주시는 하나님을 믿고, 나에게 찍힌 하나님의 인을 기억하며 삽니다.
맺는 글
"아직 때가 아니다"가 아니라
"지금 일어나 지으라"

학개서는 우선순위에 대한 책이에요. 백성은 바쁘고 가난하다는 이유로 하나님의 집을 미뤘지만, 사실은 자기 집이 먼저였어요. 그 결과 아무리 일해도 구멍 난 전대처럼 새어 나갔어요. 학개는 "너희 길을 살피라"고 외쳤고, 백성은 놀랍게도 즉시 순종했어요.

그리고 하나님은 "내가 너희와 함께 하노라"는 두 단어의 약속으로 그들을 일으키셨어요. 초라해 보이던 그 성전에는 훗날 성전보다 크신 분이 들어오셨어요. 우리가 오늘 지어야 할 집도 그래요. 작아 보여도 예수 그리스도께서 거하시는 집이라면 그 영광은 이전보다 커요.

"이 성전의 나중 영광이
이전 영광보다 크리라…
내가 이곳에 평강을 주리라" (2:9)

※ 본문 인용은 개역개정을 기준으로 했습니다.